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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것, 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
February 2, 2025
흔히 ‘본질’, ‘감각’, ‘정체성’ 등으로 불리며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 주제들로 인해 많은 기업의 비즈니스 방향이 혼란에 빠지거나 때로는 갈등을 겪기도 합니다. 이번 정리가 브랜드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시는 분들에게 작은 실마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본 아티클은 하이드라프트®가 고객 컨설팅 과정에서 실제 활용하는 에셋의 일부를 발췌하여 구성하였습니다.

그동안 여러 차례 언급된 ‘본질, 철학, 감각, 정체성, 진정성 등’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들에 대해 막연한 궁금증을 품고 있었거나 그 함의에 닿고자 노력해온 분들에게 이번 아티클이 작은 실마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논리로 설명하기 까다로운 영역인 만큼 이번 글은 그동안 작성한 글들 중 가장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정리한 내용입니다. 다소 무겁고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커피 한 잔과 함께 여유 있게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에 관하여
흔히 ‘보이지 않는 것’은 ‘감각’, ‘철학’, ‘정체성’ 등의 단어로 불리며 브랜드를 정의할 때 자주, 때로는 무분별하게 사용됩니다. 이번 아티클에서는 편의상 ‘본질(Substance)’이라는 단어로 통칭하여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본질’은 철학의 형이상학(形而上學)적 개념으로 단순히 인간의 오감으로 감지할 수 없는 비물질적 실재, 즉 물질적인 세계보다 상위에 존재하는 무언가를 탐구해야만 취할 수 있는 개념입니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눈에 보이는 것 너머의 것들’이 어떤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느껴왔으며 이러한 현상은 시대, 문화, 분야를 초월하여 지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개념들은 정형적으로 포착하기 어렵고 논리적으로 설명 ( — 논리라는 것이 ‘경험적 사실’의 부재를 설명하기 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 ) 하기 까다롭기 때문에 형이상학이라는 학문으로 별도 정립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 형이상학(形而上學)은 사물의 이상(理想)적 형태를 탐구하는 학문이 아닌 ‘물질적인 것보다 상위에 있는 것을 탐구하는 학문’을 의미합니다. 형이상학을 대표하는 철학자로는 아리스토텔레스를 꼽을 수 있습니다.

형이상학은 단순히 과거의 개념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해 현대 인간 사유(思惟)의 중심에 깊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저명한 인물들, 학자들, 기업의 CEO와 오너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도 결국 ‘본질’로 귀결됩니다.

예를 들어 —  예술가가 작품 속에 담고자 하는 의도, 창업자가 기업과 제품에 부여한 철학, 한 브랜드가 전달하고자 하는 감각적 정서들은 모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들’입니다. 때때로 생각이 편협한 사람들이 이런 무형 요소들을 ‘감성 마케팅’, ‘디자인 취향’ 정도로 쉽게 치부하지만 사실은 그 무형 요소들이야 말로 브랜드를 결정짓는 중요한 축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
문제는 이러한 본질의 중요성을 ‘감각적으로 경험하지 못한’ 구성원들이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에 포함될 때 발생합니다. 이들은 본질에 대한 탐구 과정을 비효율적으로 느끼거나 즉각적인 단기 매출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 중요성을 무조건적으로 폄하합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본질의 있음’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이 본질의 탐구를 반대하거나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이며 모순입니다. 결국 이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 차이는 비즈니스 의사 결정에서 갈등을 초래하게 됩니다. 즉 본질과 그 중요성을 직관적으로 감지하고 그것을 기업, 제품, 서비스에 구체화하려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큰 갈등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없다’와 ‘있다’
이 갈등은 단순한 ‘견해의 차이’가 아니라, ‘감각적 경험의 유무’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보다 깊이 있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매커니즘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 앙리 베르그손(Henri Bergson)의 이론 중 하나를 살펴보겠습니다.

· ‘없다’는 관념 속에는 그것이 ‘있다’고 여기는 관념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 앙리 베르그손, 《창조적 진화》 中


· 1. 어떤 것이 ’없다’를 생각할 때, 먼저 그것의 ‘있다’를 떠올린 후 부정하는 과정을 거친다.



· 2. 따라서 '없다’의 관념은 '있다’의 관념에 부정이 합산된 사고이다.

정리하면, ‘없다’는 단순한 무(無)가 아니라, 우리가 본래 경험했던 ‘있다’의 전제 위에서만 성립합니다. 따라서 ‘본질의 있음’을 감각적으로 경험해 본 사람, 개념적으로 이해한 사람만이 그 ‘본질의 없고 있음’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언어적 역설이 아닙니다. ‘없다’는 어떤 것이 존재하지 않음을 인식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반드시 그 ‘있음’을 먼저 상상하고 인지한 후 그것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즉, 본질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반드시 그 본질이 ‘있을 때’를 감각적으로 경험한 적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없다’는 판단조차 할 수 없습니다. 이 논리를 비즈니스 맥락에 적용하면, 본질을 직감한 사람만이 그것의 부재를 문제 삼을 수 있으며 본질을 체감하지 못한 사람은 애초에 문제 자체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럼 ‘본질’은 어떻게 볼 수 있는가?
사실 ‘본질’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언어적 설명만으로 그것을 이해를 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기본적으로 ‘본질’에 닿기 위해서는 특정 대상과 그것을 둘러 싸고 있는 환경들에 공감과 열린 사고로 다가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조수용 씨의 《일의 감각》에서는 ‘어떤 대상을 좋아하려고 노력하는 마음’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좀 더 쉽고 구체적으로 나의 취향에 맞는 브랜드나 대상을 찾아 보는 것이 좋은 방법입니다. 그리고 그 대상에게 왜 끌렸는지를 생각해 보고, 그 대상이 지닌 정보들을 접하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그 대상과 더 긴밀하게 교류하고 더 깊게 이해하게 될 겁니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브랜드에 끌리는 이유는 단순히 제품이 예뻐서? 광고가 멋져서?가 아니라 그보다 더 근원적인 어떤 ‘느낌들’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브랜드가 고객의 마음 속에 자리 잡는 매커니즘의 시작입니다. 이런 부단한 의지와 노력이 있다면 ‘본질’을 경험하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떤 대상에 공감과 열린 마음으로 다가갈 노력, 좋아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그 대상의 본질에 닿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마찬가지로 나의 기업, 제품을 좋아하지 못한다면 그 ‘본질‘에 닿는 것 역시 불가능합니다.

· 성공은 승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승리하려는 의지에 있기도 하다. — 프리드리히 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中

결국,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는 의지, 그것이 곧 좋은 브랜드를 완성하기 위한 출발점입니다. 성공적인 비즈니스는 ‘보이는 것’의 완성도 이전에 ‘보이지 않는 것’을 얼마나 잘 설계하고 구현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브랜드는 단지 시장 대응 전략이 아니라 철학의 구현이며 태도의 정립입니다. 본질을 탐구하고 정립하는 것은 곧 브랜드를 살아 숨 쉬게 만드는 작업이자 모든 마케팅·디자인·운영 등 기업이 지닌 모든 자원의 기준을 만들어주는 일입니다.



‘없다’와 ‘있다’ 관점의 혁신
끝으로 故 클레이튼 크리스텐슨(Clayton Christensen) 교수의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을 ‘없다’와 ‘있다’의 관점으로 해석하며 오늘 아티클을 마무리합니다. 존속적 혁신(Sustaining Innovation)이 <시장에 이미 ‘있는’ 수요에 대응하는 것>이라면 파괴적 혁신은 <시장에 ‘없는’ 수요를 창출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존속적 혁신(Sustaining Innovation): 시장에 이미 ‘있는’ 수요를 개선하거나 강화하는 방식


·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 시장에 ‘없는’ 수요, 즉 아직 인식되지 않았지만 존재했어야 할 ‘본질’을 포착하여 새롭게 창출하는 방식

즉 시장, 소비자, 심지어 내부 구성원조차 인식하지 못했던 어떤 ‘없음’을 감각적으로 포착하고 그것을 현실 레벨로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여기서 ‘없음’는 단순히 기능적 결여(無)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대상에 필연적으로 존재했어야 하지만 아직까지 결여되어 있는 ‘본질’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본질의 없고 있음’을 감각적으로 포착하고, 나아가 그 대상에 ‘본질’이 투영되도록 이끌 수 있는 역량은 비즈니스 성공의 핵심 요소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