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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업계 브랜딩의 실종
March 1, 2023
건설 브랜드는 왜 이토록 혼란스러울까요? 오직 수주만을 위한 브랜드, 철학의 부재, 일관성 없는 수많은 네이밍, 맹목적 수익 논리 속에 ‘브랜드’가 사라진 건설업계의 민낯을 들여다봅니다.

브랜드는 커뮤니케이션의 총합이다
브랜드란 결국 커뮤니케이션의 총합입니다. 제품이나 서비스에 녹아든 철학과 태도, 그것을 설계하고 시각화하며 경험하게 하는 모든 과정이 브랜드를 이룹니다. 이는 단순한 시각적 요소에 국한되지 않고, 물리적 경험, 디지털 인터페이스, 고객 응대, 심지어 건축의 디테일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입니다. 소비자는 기업의 의도와 무관하게, 일관되지 않은 언행이나 단절된 경험 속에서도 브랜드를 해석합니다. 따라서 브랜드란 의도적으로 관리하지 않으면 그 자체로 리스크가 되기도 합니다. 무관심은 곧 방임이며, 방임은 신뢰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건설업계의 브랜드, 철학 없는 반복
하지만 국내 건설업계에서는 브랜드에 대한 이러한 접근이 부족하거나 아예 부재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많은 건설사는 자사의 브랜드를 고유한 자산으로 관리하고 확장하기보다는 수주를 위한 '라벨'처럼 사용하고 있습니다. 건물 외벽이나 광고에 삽입되는 로고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며 브랜드 철학은 수익 논리 속에 희석되어 버립니다. 실제로 브랜드 슬로건이나 아이덴티티 가이드는 존재하더라도 그것이 실제 설계, 운영, 커뮤니케이션 전반에 녹아드는 경우는 드뭅니다. 브랜드가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사용되는' 현실 속에서 브랜드는 자산이 아니라 소모품이 되어버립니다.


브랜드의 소외,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되다
그 이유는 업계의 고유한 생태구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국내 분양형 부동산 모델에서는 '시행사'와 '시공사'라는 이원화된 구조가 일반적입니다. 사업을 기획하고 자금을 운용하는 주체는 시행사이며 이들은 프로젝트별로 TF 형식으로 조직되어 단기간에 해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시공사는 해당 프로젝트를 실제로 구현하는 역할을 맡지만, 디자인, 마케팅, 운영 등 브랜드 경험 전반을 결정하는 데에는 제한적인 권한만을 가집니다. 결국 소비자가 인식하는 브랜드는 시공사의 로고일 수 있으나 실질적인 콘텐츠는 시행사의 철학이나 기획에 기인하게 되는 모순적인 구조입니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건설사가 브랜드 전략을 장기적으로 누적하거나 통제하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그 결과 브랜드는 철학 없이 반복 사용되며 브랜드 간의 경험 편차는 더욱 커져 갑니다.


신뢰를 갉아먹는 브랜드 불일치

이러한 상황에서 건설사들은 프로젝트별로 자사의 브랜드를 반복적으로 제공하지만 그 과정에서 브랜드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은 매우 제한적입니다. 결과적으로 소비자는 동일한 브랜드 아래 전혀 다른 품질, 분위기, 경험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는 브랜드 자산의 누적은 커녕, 혼란과 피로를 유발하게 됩니다. 브랜드는 일관성 있는 반복을 통해 신뢰를 쌓아야 합니다. 하지만 현재의 건설업계 브랜딩은 불일치를 양산하며 ‘신뢰’와 ‘출처’의 기초를 흔들고 있습니다.


글로벌 호텔 브랜드의 사례에서 배우다
글로벌 호텔 프랜차이즈 기업들의 사례는 이와 매우 대조적입니다. 메리어트, 힐튼, 아코르, 하얏트, IHG 등은 브랜드를 제3자에게 라이선스 형태로 제공하되 엄격한 평가 기준과 품질 유지 프로세스를 통해 일관된 브랜드 경험을 유지합니다. 브랜드 가이드라인은 물리적 공간 설계에서 서비스 매뉴얼, 심지어 고객 응대의 톤앤매너까지 포괄합니다. 그들은 브랜드 철학을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하고 이를 운영 파트너와 함께 지켜내는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는 단지 법적 계약에 기반한 운영이 아니라 브랜드를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성장시키는 방식입니다.


브랜드 네이밍, 정체성의 혼란
국내 건설사들의 브랜드 확장 양상을 보면 무분별함이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네이밍 규칙이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일 만큼 각기 다른 컨셉과 메시지가 혼재되어 있으며 하나의 브랜드가 아파트, 오피스텔, 복합단지 등 다른 니즈 및 행동 패턴을 지닌 건축물을 넘나들며 적용되기도 합니다. 카테고리의 명확성이 결여된 브랜드 확장은 소비자에게 혼란을 가중시키고 브랜드의 고유성과 전문성을 훼손합니다. 결과적으로 브랜드는 더 이상 정체성을 지키지 못한 채 일시적인 마케팅 수단으로 전락합니다.

· 현대건설의 힐스테이트: 힐스테이트 녹번역, 힐스테이트 송도 더테라스, 힐스테이트 클래시안, 세종 마스터힐스, 힐스테이트 리버시티, 힐스테이트 아티움시티 등

· HDC의 아이파크: 포항아이파크, 청라국제도시 아이파크, 서울숲 아이파크 리버포레, 고덕 아이파크 디어반, 속초 아이파크 스위트, 서초 센트럴 아이파크, 운정 아이파크 더 테라스 등

· 대우건설의 푸르지오: 수원역 푸르지오 더 스마트, 지제역 푸르지오 엘리아츠, 푸르지오 시그니처, 푸르지오 엘리포레시티, 검암역 로열파크씨티 푸르지오, 감일 푸르지오 마크베르, 과천 푸르지오 오르투스


브랜드는 자산이자 유산

이처럼 명확한 브랜드 아키텍처 없이 진행되는 확장은 장기적으로 브랜드의 신뢰성과 존속 가능성을 해칩니다. 브랜드는 단순히 이름을 붙이는 일이 아닙니다. 이름은 철학과 시스템 위에서 관리되고 유지되어야 합니다. 소비자는 명확성과 일관성을 원합니다. 복잡함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지만 혼란은 피해야 할 대상입니다. 브랜드가 체계 없이 확장되고 경험이 단절된 채 유지될 때, 소비자는 더 이상 그 브랜드에 신뢰를 보내지 않습니다. 브랜드는 단기적 수익보다 장기적 관계를 기반으로 구축되어야 하며 이는 건설업처럼 수십 년 간 물리적 공간에 남는 산업에서는 더욱 중요한 이슈입니다. 브랜드는 기업이 남기는 흔적이자 유산입니다. 이를 소모품처럼 다룬다면 결국 브랜드는 기업의 철학이 아닌 비즈니스의 부속품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철학이 담긴 건설 브랜드를 위하여
건설업계에도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브랜딩 전략이 필요합니다. 반복적인 로고 사용이 아닌 브랜드의 철학을 관철하고 경험을 설계하며 신뢰를 쌓아가는 긴 호흡의 전략 말입니다. 단기적 이득 관점이 아닌 장기적 신뢰를 지향하는 브랜드가 건설업계에도 등장하길 기대해 봅니다. 브랜드는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철학의 총체이자 고객과의 약속입니다. ‘진심’과 ‘철학’을 담아 물리적 공간을 넘어 정신적 공간까지 짓는 브랜드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