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티클은 교육 분야의 ‘구성주의’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현대 교육 환경에서 ‘구성주의’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번 정리를 통해서 늘 어렴풋하게 알고만 있던 이 개념을 좀 더 체계적으로 내재할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교육학, 교육공학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교육 분야의 경계 밖에서 색다른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었고 덕분에 자유롭고 흥미로운 사고들이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이번 아티클을 통해 구성주의가 어떤 철학적 흐름 위에 놓여 있는지, 다른 철학적 사조들과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오늘날의 교육 환경에서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를 차근히 들여다보려 합니다.
[1. 새로운 이념과 사회 변화]
새로운 이념은 언제나 사회 전반의 지배적인 가치 체계에 대한 비판과 함께 등장합니다. 이런 철학적 사조는 특정한 ‘시대정신(Zeitgeist)’을 반영하여 인간의 인식, 권력, 표현 방식을 재구성하고 세계관을 전환하려는 커다란 ‘지적 움직임’의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철학적 사조는 사회 전반의 철학적, 과학적, 정치적 변화와 깊이 연결되어 있으며 하나의 영역에서 시작된 변화가 다른 영역으로 확산됩니다. 이것이 철학적 사상들이 문학, 예술, 교육, 심지어 산업과 기술 분야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이유입니다.
[2. 구성주의 그리고 구조주의, 탈구조주의, 해체주의]
우선 구성주의를 조금 더 효과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구조주의, 탈구조주의, 해체주의를 간략하게 살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시계열 순으로는 ‘구조주의 - 구성주의 - 탈구조주의 - 해체주의‘의 흐름으로 그 사조의 경향이 강하게 나타났습니다. 엄밀하게는 교육학, 심리학의 흐름에서 파생된 <구성주의>는 함께 언급한 특정 철학 사상을 직접적으로 계승하지는 않지만 어떤 대상의 의미를 고정된 절대 진리(객관적 실재)가 아닌 개인의 인식 속에서 구성되는 것으로 본다는 점에서 탈구조주의와 일정한 동질성이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해체주의는 탈구조주의의 한 분파로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구조주의(Structuralism)
· 인간 사고나 사회 문화 현상을 '구조'로 파악
· 인간 주체보다 구조(system)의 우선성을 강조함
· 페르디낭 드 소쉬르, 자크 라캉 등
구성주의(Constructivism)
· 인지심리학 및 교육학 분야에서 파생
· 지식은 개인의 경험과 상호작용을 통해 '구성'하는 것
·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구성'의 문제로 본다는 점이 유사
· 장 피아제, 레프 비고츠키 등
탈구조주의(Post-structuralism)
· 구조주의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
· 의미는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차연(différance)
· 인간은 구조로 규정되지 않으며 불확정성, 유동성 강조
· 미셸 푸코, 질 들뢰즈, 자크 데리다 등
해체주의(Deconstructionism)
· 탈구조주의에서 파생되었으며 더 급진적
· 언어의 이중성, 모순, 부재를 분석
· 텍스트 자체 해체하려는 시도
· 자크 데리다 등
<구조주의>는 인간 세계의 사고, 언어, 문화 등이 보이지 않는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구조에 의해 수동적으로 형성된다고 해석합니다. 반면, <구성주의>는 인간이 자신의 경험과 인식의 과정을 통해 능동적으로 의미를 구성하며 세상을 유기적으로 만들어가는 존재라고 해석합니다. 바로 이 맥락이 요즘 너도 나도 언급하는 ‘경험(experience)’이라는 키워드를 해석함에 있어서 핵심이 됩니다. 그러나 개념적 함의를 충분히 이해하고 접근하는 개인이나 기업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3. 구조와 구성의 차이]
앞선 철학적, 이론적 사상들은 모두 라틴어 ‘struere(~을 만들다, ~을 쌓다)’라는 어원을 공유하고 있으며 건축, 조형 등으로 대표되는 인간의 창조적 행위와 크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 개념을 조금 더 자세하게 이해하기 위해 '구조'와 '구성’의 차이를 간단히 살펴 보겠습니다.
건축적 맥락의 ‘구조(structure)’
· 물리적인 구조, 고정된 형태
· 기술적이고 기능적인 부분
사회적 맥락의 ‘구조(structure)’
· 이미 이루어진 안정적인 틀, 체계, 규범 등
· 일방적이며 변화되지 않는 정적인 형태
건축적 맥락의 ‘구성(construct)’
· 구조(structure) 기반의 창의적 완성을 향한 과정
· 개념적, 창의적, 설계적 상상력
사회적 맥락의 ‘구성(construct)’
· 주도적, 능동적, 창조적으로 변화하는 과정
· 상호작용적이며 변화와 발전을 수반
정리하자면, ‘구조’는 정적이고 주어진 틀, ‘구성’은 동적이며 창조적 행위입니다. 하지만 두 개념은 서로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라 하나가 기초(구조)가 되고, 다른 하나는 변화와 창조(구성)의 과정을 담는 상호보완적 관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담으로 인간이 하는 많은 일 그리고 ‘IT 분야’에도 건축 용어가 그대로 차용되어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디자인, 개발, 기획 등 비즈니스 전반에 모듈, 블루프린트, 디자인, 아키텍처, 파운데이션, 스트럭처, 빌드업 등의 건축 행위에서 정립된 단어들을 사용되는 것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실제로 비즈니스의 행위는 건축과 상당히 유사합니다.
[4. 구조와 구성의 관계]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구조주의와 구성주의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구조(structure)’라는 단어에 접두어 ’con-‘이 결합된 형태가 바로 ‘구성(construct)’입니다. 그리고 탈구조주의와 해체주의 영문은 각각 ‘구조’와 ‘구성’라는 단어에 접두어가 결합된 형태입니다.
구조주의:
· ‘structure(구조)’ → ‘Structuralism’
구성주의:
· ‘con-(함께)’ + structure(구조) → ‘Constructivism'
탈구조주의:
· ‘post-(뒤에)’ + ‘structure(구조)’ → ‘Poststructuralism’
해체주의:
· ‘de-(분리)’ + ‘construct(구성)’ → ‘Deconstructionism’
따라서 ‘구성(construct)’은 필연적으로 ‘구조(structure)’를 내포합니다. 정리하자면 구성주의는 구조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한 단계 더 나아가려는 시도였기 때문에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구성주의가 지향하는 새로운 ‘구성’을 창조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여담으로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과 마찬가지로 ‘탈구조주의(Poststructuralism)’ 역시 ‘post-‘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 이유는 기존의 ‘구조주의’ 사상과 완전한 분리를 나타내지 않기 위함입니다. 다시 말해서 기존 사상과 완전한 단절이 아닌 내부의 한계를 인식하고 비판적 성찰을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 사상들이 대립각을 세웠다면 완전히 다른 용어나 ‘next-’ 같은 접두어를 사용했을 겁니다.
[5. 교육적 맥락의 구조와 구성]
교육 분야에서 ‘구조(structure)’는 ‘교육’이라는 행위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교수자, 지식, 교과 등의 객관적 필수 환경과 요소들을 이야기할 겁니다. 이런 교육의 객관적, 물리적 ‘구조’의 안정이 있어야만 학습자가 ‘구성’을 원활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구성’은 학습자가 목표한 지점에 도달하게 되면 적어도 일시적으로는 ‘구조’가 됩니다.
앞선 설명처럼 교육에서 ‘구조’는 객관적 요소이자 필수적 요소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구성주의’와 같은 학습자 중심 사상에 더욱 집중하게 되는 본질적인 이유는 단순히 주어진 구조를 활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학습자 스스로가 자신 주도로 의미를 ‘구성’하고 그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새로운 ‘구조’를 형성하는 것이 더욱 이상적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기서 학습자의 주도라는 것은 절대로 독자적으로는 이루어 낼 수 없는 것입니다. 다양한 교수-학습 환경에 대한 상호작용과 연속성, 그 환경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과 밀접하게 교류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이러한 관계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이제 ‘구성’이라는 개념의 어원적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뿌리를 따라가다 보면, 학습자 주도의 본질과 그 조건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더 명확해질 것입니다.
[6. 개발 관점의 구조와 구성]
이런 교육의 ‘구조-구성’의 관계를 프로그래밍 관점에서 접근하면 흥미로운 해석이 가능해집니다. Java, Python, C++ 등 객체지향 프로그래밍에서 클래스의 객체를 초기화하는 함수로 ‘constructor’가 사용됩니다. 여기서 초기화란 단순히 ‘0’, ‘null’, ‘not’ 같은 비워진 상태가 아니라 어떤 목적을 지향하며 객체가 유효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즉 어떤 대상이 목적에 맞게 존재할 수 있도록 기반을 구조화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후 목적에 닿기 위해 그 ‘구조’를 점진적으로 심화시켜 나가는 과정이 ‘구성’입니다. 마찬가지로 학습자 역시 단순히 비어 있는 존재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목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교수자(constructor)에 의해 구조화된 기반 위에서 출발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구조화된 기반 위에서 학습자의 주도적 ‘구성’이 점진적으로 이뤄지며 점차 목적지에 가까워지게 됩니다.
[7. 구성의 어원과 함의]
‘construct’의 어원은 라틴어 ‘construere’에서 유래되었으며 이는 con- (함께) + struere (쌓다)로 구성된 말입니다. 즉, ‘함께 쌓는다’는 의미입니다. 재밌는 것은 현대 교육 환경이 ‘구조’보다 ‘구성’에 더 집중하게 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듯합니다. ‘con-(함께)’라는 것은 결국 인간은 혼자가 아니라는 인문학적 사고가 깔려 있는 듯합니다. 구성은 곧 ‘함께 쌓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 ‘con-(함께; together)’ + ‘struere(쌓다; to pile up;)’ → construct
인간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건축 역시 다양한 전문가들(— 건축사, 구조기술사, 측량사, 안전관리사, 인테리어, 조경, 목수, 미장, 전기, 배관, 설비, 시공 등 — )이 함께 만드는 것이고 우리가 하는 모든 일, 삶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구성주의’가 교육에서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학습자와 교수자, 학습자와 학습자, 교수자와 교수자, 지식과 지식 등을 감싸 안고 모든 인류 공동체가 함께 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8. 탈구조주의, 해체주의 관점의 구조와 구성]
구성주의를 실현하는 유효한 방법론 중 하나인 분산학습(Distributed Learning)은 학습자와 학습 환경이 물리적·시간적으로 분리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학습 방식을 뜻합니다. 이 관점에서 교육의 구성주의는 탈구조주의, 해체주의와 닮은 점이 있습니다. 예컨데 탈구조주의와 해체주의는 어떤 대상에 부여된 ‘고정된 의미’를 절대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그 안에 잠재된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기 위해 분해와 재조립의 과정을 중시합니다. 그리고 그 환경은 파편화된 조각들로 가득차 있는 것과 같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무언가를 '구성한다'는 행위 역시 파편화된 조각들을 마주하는 환경과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교육 환경(지식, 교과)은 체계적으로 구조화되어 있지만 그 구조는 적어도 학습자에게는 일시적, 반복적으로 해체된 상태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이 학습자의 ‘구성’이 특정 목적까지 완성되면 그것은 학습자에게는 적어도 일시적으로는 ‘구조’가 됩니다. 그리고 이 흐름은 지속적으로 반복됩니다. 이런 순환 속에서 ‘구성’의 본질, 그리고 교육 분야에서 말하는 ‘성장’과 ‘경험’의 본질이란 우리 인간이 교육과 경험을 통해 내재한 크고 작은 구조들을 끊임없이 해체, 조합, 응용하는 반복되는 재구성의 과정 속에서 새로운 국면과 낯선 위기를 마주하고 극복하며, 그 안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9. 마무리]
구성주의를 직관적으로 비유하자면 마치 빈 캔버스에 학습자가 주도적으로 한 장의 그림을 그려나가는 과정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학습자의 의도를 중심으로 교수자의 유기적인 피드백이 양분이 되어 학습자 스스로 배경을 채우고 선을 더하고 색을 입혀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점차 구체화되고 또 심화되어 가는 모습이 바로 구성주의가 그리는 학습의 풍경일 것입니다. 오늘 내용은 ‘교육 분야’에 포커스가 되어 있다보니 관련 분야가 아닌 분들에게는 조금 어려웠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다양한 관점에서 교육의 ‘구성주의'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모든 현상이 얼마나 중층적이고, 중첩적이며,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럼 다음 글에서 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